‘이삭줍기’는 부농이 내린 특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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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는 부농이 내린 특권이었다?

[백영주의 명화살롱] 21. 밀레 ‘이삭줍기’

  • 승인 2014-07-23 10:01
  •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 밀레, <이삭줍기>,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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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 <이삭줍기>, 1857


추수가 끝난 뒤 극빈층 농민에게 베푸는 일종의 적선
살기위한 고된 노동… 여인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숭고해 보이기까지
농촌의 모습만 그렸던 밀레, 비평가들에 사회주의자라고 비난 받기도



영화 <완득이>에서 주인공 완득이는 미술시간에 <이삭줍기>를 보고 남다른 감상을 남긴다. “(그림이 어때 보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뭘 봐?’ 이러는 것 같은데요, 일단 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 온 이방인들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질 필요가 있었어요. 맨 오른쪽 저 아줌마 농장 주인이랑 한 방 붙으려고 주먹 쥐기 일보 직전이고요. … (후략)” 필리핀 출신 엄마와 한참 킥복싱을 배우고 있는 자기 처지에 이입해 나온 해석이긴 하지만 놀라울 따름이다. 그림의 원래 배경과 상반되면서도, 그들의 슬픈 현실과 일맥상통하는 감상평이기 때문.

밀레는 농촌의 모습을 주로 그려 ‘농부의 화가’로 불렸다. 그는 실제로 프랑스 서북부의 작은 농촌 마을 출신이었지만, 평생 문학을 가까이했고 파리에 미술을 공부하러 간 지식인이기도 했다. 밀레는 초상화 한 점이 살롱전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초기에는 쉘부르와 파리를 오가며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1840년대 초기에는 주로 초상화와 풍경화, 누드화를 그렸으나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바르비종으로 이주하면서 밀레는 자연 풍경을 그리는 바르비종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때 동료 화가이자 절친한 친구인 루소와 평생의 후원자 상시에를 만나게 된다. 1848년 살롱에 출품한 <키질하는 사람>이 그가 최초로 그린 농민의 생활상이며, 그림은 배경이나 인물도 아닌 오로지 ‘키질’이라는 작업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밀레, <키질하는 사람>,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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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 <키질하는 사람>, 1848

1848년 살롱에 출품한 ‘키질하는 사람’, 밀레가 최초로 그린 농민 생활상


1857년 출품한 <이삭줍기>는 밀레 특유의 농촌 풍경 속 웅장함이 깃들어 있는 대표작 중 하나다. 이삭줍기는 극빈층 농민에게 부농이 베푸는 일종의 적선으로, 추수하고 난 뒤 들판에 남은 이삭을 주워가도록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허리가 휘도록 이삭을 주워도 아주 적은 양의 밀밖에 얻을 수 없어, 여인들이 들이는 노력에 비하면 형편없는 성과였다. 하지만 굶주리고 있는 다른 농민에 비하면 이들은 소위 ‘땡 잡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배고픈 현실. 완득이가 본 대로 주먹을 꽉 쥔 심정에 필사적으로 자기 몫의 이삭을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밀레의 그림에선 이들의 비참한 처지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이삭을 줍는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밀레는 농촌의 풍경을 주로 그렸지만 현장에서 전부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작품은 수많은 밑그림을 기반으로 인물의 배치와 동작을 정교히 재구성한 것이며, 그 결과 조각같이 웅장하고 육중한 느낌을 감상자가 받는 것이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이삭줍기>를 ‘누더기를 걸친 허수아비들’이라 혹평하고, 심지어 밀레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밀레는 ‘나는 평생 들밖에 보지 못해서 그걸 그렸을 뿐’이라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그는 전통을 중시한 보수적인 성격이었으나 평생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그리기만 했을 뿐. 그런 담백함이 바로 작품의 웅장함을 낳았다.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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