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다시 회복해야 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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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다시 회복해야 할 가치

  • 승인 2016-02-11 14:03
  • 신문게재 2016-02-12 23면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 목사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 목사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 목사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 목사
2015년 연말 성탄절을 얼마 앞둔 추운 날씨에 맨발의 어린 여자아이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발견되었다. 게임 중독에 빠져 딸을 감금하고 학대한 아버지로부터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아이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 장기결석 학생들에 대한 전수 조사가 시작되었다. 경악할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부천에서는 친아버지가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절단해 일부는 유기하고, 일부는 자기 집 냉장고 속에 보관해 온 일이 밝혀졌다. 며칠 뒤 더 엄청난 사건이 우리 귀에 들렸다. 독일 유학파로 박사학위를 가진 목사가 가출했다 집으로 돌아온 여중생 딸을 5시간이나 때려 숨지게 하고, 11개월 동안 시신을 방치한 사건이 터졌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인간성이 갖춰지지 않은 '인간 말종들'의 비행이라고 일축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너무도 많은 개연성(蓋然性)이 존재한다.

이 사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 문제가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가정들에서 분노와 폭행이 빈번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들 가정 모두가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불안과 위기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다. 11살 딸을 감금하고 학대한 아버지는 직업이 없이 동거녀의 벌이에 의해서 생활하는 불안정한 상태였고, 게임을 도피처로 삼아 중독에 빠져 있는 30대였다.

또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아버지는 특별한 직업 없이 일용직 근로자로 일했으며, 여중생 딸의 시신을 방치한 목사는 이름은 대학의 강사였고 목사였으나, 경제적인 어려움과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불안과 위기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모를 자극하고 분노케 했고, 이것이 폭행과 학대로 이어진 것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 사회는 실패와 상실의 공포에 내몰려있다. 멀쩡했던 사람이 한 순간 '노숙자'로 전락한다. 이 실패의 공포가 우리 사회를 만성 불안에 시달리게 하고, 그 불안을 애써 참고 견디지만, 가장 취약한 곳이 바로 가정이다. 불안이 분노로, 분노가 폭력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그래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는 어떻게 보면, 불안한 사회상황과 구조 가운데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안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의 해소인데,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문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공유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극히 개인화되어 있고, 개인은 파편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사회적인 불안과 리스크를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한계를 넘어선 문제 앞에서는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립화는 존재의 고립뿐만이 아니라, 문제의 고립화를 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의 함께 사는 공동체가 더욱 그리워진다.

얼마 전 끝난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체였다. 빚보증을 잘못 서서 경제적인 위기를 맞이한 가정,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과 살아가야 하는 젊은 과부,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배운 것이 없어 소외될 수밖에 없는 비천한 신분의 주인공들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가난 속에서도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고, 살다보면 맞이하는 불행의 그림자를 함께 이겨 몰아내는 그 골목 공동체가 인상적이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보면, 그렇게 나눠 먹고, 한 식구처럼 생활하는 그들이 참 낯설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힘이 있었다. 불행을 이기는 힘!

어려운 문제가 있는가? 혼자 전전긍긍하지 말고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를 하자.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 꼭 어떤 도움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문제는 작아지게 된다. 바쁜 세상에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가? 하나님은 남을 도울 때, 돕는 사람에게 더 큰 복이 임하게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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