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뻔~~~ 뻔~~~’
가난한 시절 아이들의 간식거리였으며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번데기는 이제 추억의 군것질거리다. 회사 근처 식당에 가면 어릴 적 즐겼던 그 먹거리가 상위에 올라온다. 입맛도 시대도 변하다 보니 번데기의 맛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그런데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 번데기가 억울한 누명을 썼던 일이 있었다.
1978년 9월 26일 오후 서울시 상계동, 미아동과 성북구 정릉동 등 동북지역에서 번데기를 먹은 28명의 아이들이 심한 경련과 복통, 구토 등의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
같은 날 경기도 파주에서도 똑같은 증상을 보인 아이 8명과 어른 1명이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번데기 행상이 마당에 널어놓은 번데기를 몰래 갖다 먹고 탈이 난 것이었다.
▲ 응급치료를 받고있는 어린이들 모습과 문제의 번데기를 판 경동시장 가게에 위생처리가되지 않은 번데기마대가 쌓여있는 모습/사진=1978년 9월 27일자 동아일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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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주에서 아이들 8명이 숨지고 29명이 중태에 빠지면서 ‘번데기를 먹은 아이들이 죽었다’라는 소문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가 된 번데기는 구멍가게와 행상들이 서울 경동시장의 중간도매상에게서 받아와 판 것이었다. 중간도매상에게 공급된 번데기는 도매상이 경북의 한 중앙 생사 공장에서 마대에 담긴 것을 구입해 판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의 증상은 식중독이 아닌 독극물 중독으로 추정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 숨진 어린이에게서 맹독성 농약인 파리티온 성분이 검출된 것이 확인됐다. 파라티온이 묻은 마대에 번데기를 담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됐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번데기 사건은 한 가정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다. 당시 사망한 어린이 중 김중용은 아버지가 사다 준 번데기를 먹고 화를 당했다. 밤에 아이가 아파하자 아버지 김희철은 아들을 들쳐 업고 11군데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치료를 거부당하다 결국 숨을 거뒀다.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게 한 아버지의 애통함은 오죽했을까. 김희철은 아들을 죽게 한 농약을 자신의 목에 넣으며 생을 마감했다.
번데기의 슬픈 이야기였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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