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진정한 강함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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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진정한 강함을 묻는다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4-05-27 14:40
  • 신문게재 2024-05-28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여기저기서 새싹들의 흥얼거림이 들려온다. 신록은 짙어가고 하천 변에 노랗게 피어 있는 금계국, 작약과 장미를 비롯한 꽃들의 환희는 대지에 울려 퍼진다. 봄의 푸르름과 화려함에 눈부시다. 하지만 화사하게 핀 꽃보다 이른 봄에 피어난 꽃들이 더 생기발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추위를 이기고, 봄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헷갈리는 초조함도 기다림으로 이겨낸 꽃들이기에 그렇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삶에서 겨울의 혹한처럼 찾아오는 고난을 밑거름 삼아야 하는 시간이 있다. 고난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고 자기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세상에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시간을 겪지 않는다면 시선은 늘 낮은 곳이 아닌 높은 곳, 수수한 것보다 화려한 것들에 꽂히기 쉽다.

하지만 모진 시련을 이겨낼수록 강한 사람이 되기 쉽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계속 강하게 남아 있으려니 주위를 따뜻한 시선으로 둘러볼 여유가 없다. 삶의 지향점은 오로지 성공에 이르는 외길로 향한다. 자칫 자기를 둘러싼 타자를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쯤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늘 자기를 중심으로 위쪽으로 향하는 사람을 우러러볼지는 몰라도 공감하며 함께 길을 가기는 어려울 테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의 사다리에 높이 오르면 욕심이 줄어들어 부드러운 봄바람 같을 듯한데 오히려 겨울바람처럼 상대를 몰아친다. 그러니 세상은 불신의 벽이 더욱 높아지는 게 아니겠는가. 곳곳에서 생기는 많은 갈등은 대개 없는 자보다는 있는 자, 약한 자보다는 힘센 자에 의해 일어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강한 힘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서로 자신들이 정한 정의의 추구다. 하지만 강자가 힘에만 의존한다면 상처뿐인 승리만을 얻을 수도 있다. 최근 중동지역 주민 사이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미국·이스라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이를 말해준다. 힘으로만 몰아치면 언젠간 되돌림을 받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닐는지.

그런데도 세상에는 거창한 정의와 이익을 앞세워 그럴듯한 논리로 힘 자랑하는 리더들이 판친다. 높은 권력에 오르기까지, 유명해지기까지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자기를 다그쳐 더 강해지려는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는 욕망의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끝내 자기가 그리는 허상에 빠져 주위의 기대를 저버린 채 모두를 힘들게 한다. 그 끝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과 후흑(厚黑), 불통과 영합(迎合)이다.

노자 도덕경은 부드러움과 여성상을 강조한다. 뜻밖에도 강함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가진 글귀가 나온다. 연약함을 지켜냄을 강함(守柔曰强, 제52장)이라 한다. 힘든 상황에 마주칠 때 분노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며 부드러움을 지킴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한다. 몸이 뻣뻣해진다는 것은 몸의 각 부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증거듯이 사회도 힘의 논리에 빠지면 경직된다.

세상은 점점 흑백만 두드러지고 그 극단을 이어주는 회색지대가 쪼그라들고 있다. 회색지대가 줄어드는 만큼 다양성이 사라지고 회복탄력성은 없어지게 된다. 모두 강한 리더들이 일으키는 힘의 회오리에 너도나도 빨려들어 가서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꿀 수 있는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가슴에 들어 있는 분노의 감정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주위로 눈을 돌려보자. 바위틈 사이에서 자라나는 이름 없는 나무,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자라는 풀처럼 연약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품은 것들의 미묘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테다.

봄이 언제 오나 했더니 살포시 왔고 곡우가 지나 모종을 사서 텃밭에 심었더니 찬 기운이 돌아 냉해를 입기도 했다. 이제 완연한 봄인가 하니 여름이 문지방을 성큼 넘어서고 있다. 가는 봄날 아쉬워하지 말고 여전히 우리 곁에 눈부시게 남아 있는 오월을 느껴보자. 늘 맞이하는 일상의 신비에 눈 뜨는 이야말로 진정 강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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